당심에 짓밟힌 ‘국민의힘의 봄’
더불어민주당 경선의 열기가 찌는 듯한 무더위만큼이나 뜨겁다. 문제는 160석이 넘는 원내 과반 의석을 보유한 집권 여당의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2030 청년세대의 민심이 남녀를 불문하고 시큰둥하다 못해 아예 차갑다는 점이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지금처럼 철저하게 중장년 기성세대만의 정당이 돼버린 현상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예전에는 없었다. 48세의 여성 지역위원장이 61세의 전임 당대표 볼을 합동연설회장에서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콕 찌른 행동이 젊은 청년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상상하니 50대 후반의 남성인 필자가 괜히 민망해질 지경이다. 정치인에게는 푯값에 더하여 나잇값도 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있음을 여야를 막론하고 제발 빨리 깨달아주기 바란다.
청년세대의 이목이 집중된 주요 정당의 전당대회가 우리 헌정사에는 몇 차례 있었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21년 6월 11일 개최된 국민의힘 전당대회였다. 만 36세의 원외 인사 이준석이 나경원과 주호영 등의 내로라하는 중진 국회의원들을 누르고 당대표로 뽑혔다. 30대 0선 당수의 등장은 거대 양당을 통틀어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이준석은 기성세대가 주축을 이룬 당심에서는 패배했지만, 젊은 남성들이 주도한 민심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이준석의 국민의힘 당대표 취임은 건전하고 합리적인 민심이 편협하고 극단적인 당심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만 있다면 경직되고 케케묵은 보수 야당 안에서조차 파격에 가까운 변화와 혁신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준석의 당대표 당선을 계기로 시작된 ‘국민의힘의 봄’은 윤석열이 당심이라는 괴물을 내세워 민심을 짓밟으면서 이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윤석열의 12․3 친위 군사쿠데타는 윤석열 하수인들이 좌지우지한 중앙당 윤리위원회가 이준석을 징계 형식을 빌려 야밤에 기습적으로 숙청한 순간 이미 초읽기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준석은 절치부심 끝에 제22대 총선을 몇 달 앞둔 2024년 1월 20일에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이준석은 21세기 한국정치사에서 당심이란 괴물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최대 피해자였다. 그러므로 이준석 신당은 광범위한 민심에 터전을 잡고서 한국정치의 개혁과 쇄신을 지향해야만 옳았다.
이준석은 개혁신당을 창당한 다음 모두 세 번의 선거를 치렀다. 세 번의 선거에는 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 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골고루 포함돼 있었다. 총선에서는 독자 생존에 성공했고, 대선에서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지방선거에서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개혁신당은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이준석 사당’이라는 굴레에 여전히 갇혀 있다. 이로 말미암아 잘되면 늘 이준석 덕이었고, 안 되면 언제나 이준석 탓이었다. 이준석이 폼이 올라오면 당의 지지율도 동반상승했고, 폼이 떨어지면 당의 지지도도 그와 연동해 내려갔다. 개혁신당이 이준석 1인 정당의 이미지를 탈피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관건은 이준석이 폭넓은 민심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물그릇으로 과연 제때 환골탈태할 수 있느냐일 테다.
이타적인 민심과 이기적인 당심
민심은 누가 정권을 잡는지를 중시한다. 당심은 누가 당권을 쥐는지가 중요하다. 민심이 장기적 국익을 생각할 때 당심은 당의 단기적 이익부터 따진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위 당원주권주의를 확립하겠다며 열성 당원들의 비위를 열심히 맞추면 맞출수록 한국정치의 전반적 실력과 수준이 오히려 저하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원들 눈치만 보는 정당일수록 대다수 평범한 민중의 행복과 안위는 도리어 도외시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퇴행과 무책임에는 여야의 구분도 없고,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차이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원리와 거대 양당의 당권을 각각 장악한 기득권 세력들이 표방하는 당원주권주의는 실제로는 물과 기름처럼 양립하기 불가능한 관계인 셈이라 하겠다.
이준석은 민심과 당심 사이의 격렬한 모순과 파괴적 대립을 그 누구보다 모질고 혹독하게 직접 경험한 터였다. 윤석열 패거리가 이준석을 제거한 명분은 이른바 당심의 온전한 구현에 있었다.
시집살이 독하게 한 며느리가 나중에 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것일까? 비좁은 당심의 우물에 안주해 있기로는 개혁신당도 거대 양당과 마찬가지이다. 일례로 민심은 이준석 대표가 현재 무소속 상태인 한동훈 의원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개혁신당 당심은 한동훈을 마치 주적으로 설정한 것 같은 분위기이다.
이준석 강성 지지층이 포진한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해보면 한동훈을 겨냥한 조롱과 저주가 판을 치고 있다. 그러한 조롱과 저주에는 한동훈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내용도 부지기수다. 설상가상으로, 이준석은 그 염도에서는 정청래 지지층이나 장동혁 지지층 못잖게 짜디짠 개혁신당의 짠물 지지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별달리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니, 별다른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잠깐 있긴 했다. 작년 이맘때 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정기적으로 들를 일이 있었다. 개혁신당 대선백서편찬 특별위원회에 외부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백서의 결론은 자명하면서도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이준석 대표와 개혁신당이 좁다란 기존 지지층의 틀을 깨고 나와 드넓은 민심의 바다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였다.
제작을 완료를 백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당 사무처의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다. 당심, 아니 팬심 너머의 광활한 세계로 과감하게 시야를 넓히라는 백서의 핵심 메시지 역시 덩달아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당심보다는 민심을 먼저 보라는 주문이 시대착오적 당심의 대표적 희생양이었던 이준석에게마저 그렇게 불편한 소리로 들렸을까? 이 당이나 저 당이나. 큰 당이나 작은 당이나 나라와 국민에게는 백해무익할 당심의 목청만 쓸데없이 요란한 이때, 분노한 민심은 대폭발의 시간을 기다리며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끓어오르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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