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돈쭐’ 내주는 국고보조금 제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1부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전 대통령에게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뗀 주장과, 윤우진 전 서울 용산 세무서장에게 대검찰청 경력의 전관 변호사를 소개해준 일이 없다고 우겼던 해명이 모조리 거짓말이라고 사법부는 판단했다.
윤석열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이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터다. 여기에 징역 1년 6개월이 추가된 상황은 침몰하는 배에다 물 한 바가지 더 끼얹는 데 지나지 않는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의거하면 선거사범에게는 이른바 3․3․3 원칙이 적용돼 기소된 지 6개월 안에 1심 선고가 내려져야 하고, 이로부터 각각 3개월 이내에 항소심과 상고심이 차례로 마무리돼야만 한다. 윤석열은 늦어도 내년인 2027년 2월 초순에는 ‘전직 대통령’ 호칭마저 박탈당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또는 자연인 ‘윤석열 씨’로 바뀌어 불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윤석열에게 별다른 타격이 되지 않을 걸로 전망된다.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민심은 아예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극렬 추종자들만 바라보며 생활해왔다. 윤 어게인 세력으로부터 ‘대통령님’이라 계속 불릴 수만 있다면 도파민이 마구 분비되는 게 망상 가득한 음모론의 세계에 여전히 깊숙이 침잠해 있는 윤석열의 심리상태일지 모른다. 문제는 윤석열이 갖고 있는 이와 같은 비뚤어진 비정상적 심리상태가 당대표 장동혁을 위시한 국민의힘 지도부에 의해서도 대책 없이 공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언론과 호사가들의 관심은 국민의힘이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고, 즉 국민들이 납부한 혈세로 보전 받은 397억 원을 다시 토해낼지에 온통 쏠려 있다. 먼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국민의힘은 397억 원을 중앙선관리위원회에 반납할 재정적 여력이 차고도 넘친다.
국민의힘이 보유한 자산은 1천억 원을 웃도는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의 거대 정당은 주요한 선거가 실시될 때마다 재산이 꾸준히 늘어났다. 397억 원은 내후년에 총선 한번 치르면 충분히 벌충할 수 있는 금액이다.
선거보조금과 국고보조금으로 양분되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 제도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을 위한 화수분으로 그 용도가 완전히 변질된 상태다. 이를테면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선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려도 정당의 국보보조금 제도 유지에 관해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진즉에 완벽한 대연정에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국민의힘의 돈줄을 끊으려면 민주당의 돈줄 역시 아울러 차단해야 하는 게 굵은 칡뿌리처럼 서로 단단하게 얽히고설킨 한국의 제도권 정치생태계인 셈이다.
관건은 국민의힘이 우여곡절 끝에 387억 원을 완납한 다음이다. 국민의힘은 이로써 윤석열과의 절연을 이뤄냈다고 대충 퉁치려 들 공산이 크다. 함량미달의 야심가인 윤석열을 포섭해 당의 공식 대선주자로 밀어올린 사건도, 대통령이 된 윤석열이 부인 김건희와 공모해 나라 전체를 결딴낼 뻔했던 사태도 국민의힘 차원에서는 그냥 유야무야되고 만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윤석열과 한동훈을 데려와 한국 보수정당을 망친 자들은 이제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페이스북에서 외쳤다. 그런데 윤석열을 향한 아부와 굴종으로부터 홍준표 본인은 과연 자유로운가? 홍준표는 대구시장 시절 윤석열 면전에서 비굴하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김건희를 막무가내로 감싸고도는 윤석열을 심지어 사내답다고 요란하게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윤석열과 관련해서는 너나없이 50보, 100보인 곳이 대한민국 보수진영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강성 지지층의 덫에서 민주당은 무탈할까
홍준표가 윤석열을 데려온 데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지목한 인물들 가운데는 야당의 대표적 다선 중진 국회의원인 권영세도 포함됐을 성싶다. 윤석열은 2021년 여름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당대표였던 이준석을 건너뛰고 권영세와 밀접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권영세는 윤석열처럼 검사 출신이었다.
권영세는 며칠 전 JTBC 정치 토크쇼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정청래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당권을 다시금 쥐었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심경을 피력했다.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변함없이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면 야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노골적인 계산속의 발로였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 간에 빚어지는 엇박자와 불협화음이 야당에 제공하는 반사이득과 비교하면 선관위가 국힘에서 환수해갈 선거보조금 397억 원쯤은 그야말로 푼돈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을 실천하려면 397억만 토해내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힘은 장동혁과 그 주변에 똘똘 뭉친 계엄찬성-내란옹호 세력을 게워내야 한다.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가 국민의힘에 화려하게 입장할 할 수 있도록 카펫을 깔아준 당내 기득권 집단을 게워내야 한다. ‘강성 지지층’의 외피를 두르고 당에 조직적으로 대거 잠입․침투한 ‘극우 개신교도’들을 남김없이 게워내야 한다.
그들이 뱃속에 아직 남아 있는 한에는 거대 양당 체제의 한 축인 국민의힘은 한 줌 극단주의자들만 남아 썰렁해진 잠실의 올림픽공원을 배는 남산만 하게 부른 모습으로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서 유령처럼 계속 떠돌아다닐 것이다.
필자를 진정으로 우울하게 하는 건 온갖 오물과 이물질들을 뱃속에 터질 듯이 집어넣고서 올림픽공원을 뒤뚱거리며 돌아다니는 국민의힘이 아니다. 그런 국민의힘이 자연스럽게 부활당하도록 이끌어주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배가 남산만 하게 부풀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강성 지지층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낡고 탁한 고인 물들을 당장 목마르다며 앞뒤 가리지 않고 벌컥벌컥 퍼 마신 퍼마신 후과일 테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한 손에는 허구한 날 각종 정치 유튜브들만 들여다보는 데 쓰일 휴대전화기가 들려 있다. 또 다른 한 손에는 ‘검찰개혁’이란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힌 주문(呪文)이 들려 있다. 청년들의 취업난도, 서민들의 주거난도, 기업들의 경영난도 그들에게는 전연 관심사가 아닌 탓이다.
국민의힘은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민심을 고집스레 멀리하고 편협하고 무책임한 당심만 좇은 대가를 400억 가까운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정산의 시간이 민주당이라고 하여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까? 민심을 외면한 값을 현금으로 치르는 게 어쩌면 가장 싸게 먹히는 장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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