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피해야만 하는 ‘승자의 저주’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벌금 1,000만 원이 선고되었다. 당선 무효 기준선인 벌금 100만 원의 무려 10배에 달하는 액수이다.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크게 일조했던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의 저주가 오세훈을 상대로도 톡톡히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결과에 불복해 즉각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선 서울시장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선출직 공직자이다. 수도 서울의 행정과 살림을 총괄하는 최고책임자의 거취와 운명이 천만 서울시민의 손을 벗어나 사법부의 수중에 전적으로 맡겨진 상황은 제도권 정치인 오세훈에 대한 호오와 찬반을 떠나 매우 불행한 일이다.
오세훈 시장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최종적으로 확정돼 서울시장직에 더하여 공직출마 자격마저 상실할 경우 야당은 이를 사법부를 동원한 정치보복으로 규정할 게 뻔하다. 그러므로 대법원 확정 판결 직후 치러질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만에 하나 패배하게 된다면 오세훈 퇴출은 정부여당에게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승자의 저주’가 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야당이 재선거 형식으로 열린 서울시장 선거의 리턴매치에서도 승리한다면 이러한 뜻밖의 사태 전개는 2028년 실시될 예정인 제23대 총선을 ‘정권심판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구도로 확실히 몰아갈 터이다.
필자는 현역 정치 컨설턴트이다. “민심이 먼저고 법리는 나중”인 사람이다. 나는 현대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은 경쟁자에게 투표장에서 이기려 하지 않고 재판정에서 승리하려는 시도라고 확신해왔다.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비극적인 말로로 귀결되는지는 꿉꿉한 장마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지독한 무더위를 비좁은 감방 안에서 자그마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힘겹게 버텨야만 하는 전직 대통령이자 내란수괴안 윤석열과 직전 영부인이자 뇌물사범인 김건희가 처절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과연 승리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민주당의 필승 시나리오가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사면초가의 퇴진 압박에 직면한 국민의힘 당대표 장동혁이 서울시장 재선거에 직접 등판하는 ‘경우의 수’이다. 장동혁이 이제껏 보여준 엽기적인 성정과 비정상적 행보를 감안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국회 절대 다수 의석을 점유한 여당이 장동혁의 서울시장 재선거 출마 따위의 얄팍한 요행수를 바란다면 집권당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사실상 방기한 것과 다름없다. 여당에게는 운발이 아닌 실력으로 선거에서 이겨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오세훈이 설령 중도에 낙마한다고 한들 서울시장 재선거는 민주당에게는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첫 번째 이유로, 서울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각종 여론조사에서 계속 앞지르고 있다. 부정 평가의 핵심 요인이 시민들이 단연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임을 감안하면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추월하는 골든 크로스는 정부여당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당분간 바라기 어렵다.
두 번째 이유로, 최근 몇 년 동안 지루하게 지속돼온 민주당 주도의 이른바 ‘법사위 정치’에 대한 일반대중의 나날이 높아져가는 염증과 피로감이다. 특히 다수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김용민 의원과 박은정 의원 등의 범여권 정치인들이 힘으로 밀어붙인 일은 심하게 말하면 김영삼 정부 말기의 노동법 강행 통과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민주당에게 그나마 다행인 대목은 1996년 12월의 노동법 날치기 처리는 당시에 대통령이던 YS가 밀어붙였지만, 2026년 7월의 보완수사권 폐지는 이재명 대통령의 깊은 우려와 정성호 현 법무부 장관의 간곡한 만류를 모조리 무시하고 법사위 소속 친문재인 계열 인사들이 앞장서서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보완수사권 폐지의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제2, 제3의 장윤기 사건이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은 국회 법사위 소속 범여권 정치인들이 져야 할지도 모른다.
세 번째 이유로,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없는 2030 청년 세대의 분노의 감정이다. 청년층의 민주당에 대한 분노는 지금까지는 남성들이 주로 이끌어왔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청년층의 주택난이 가중되고,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소멸이 여성을 위시한 사회적 약자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민주당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은 성별, 즉 젠더를 초월한 현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민주당 지도부는 청년 최고위원제 부활 방안을 백지화하고, 전당대회 경선 출마에 필요한 기탁금을 한꺼번에 최대 네 배, 즉 400퍼센트나 인상함으로써 청년세대의 불타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주축 집단인 나이든 중장년 세대는 젊은 청년들의 민심 이반이 종국에 불러올 치명적 후과에 관해 여전히 아무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새이다. 이쯤 되면 민주당은 장동혁이 서울시장 재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도록 물 떠놓고 단체로 하늘에 기도라도 올려야 할 판국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1995년에 지방자치제도가 전면적으로 부활한 이래로 언제나 중도 성향의 스윙보터들이 승패를 좌우해왔다. 거대 양당의 소위 강성 지지층이 선거철마다 남발해온 관성적이고 기계적인 몰표는 오래된 동네 이발소 벽면에 걸려 있는 작자 미상의 풍경화처럼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요소였을 뿐이다. 수도권에서 아예 처음부터 나고 자란 까닭에 낡은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세대는 특정 정당을 ‘묻지 마 지지’하는 기성세대의 경직되고 구태의연한 투표 행태를 답습하지 않았다.
시장(市場), 민심, 그리고 청년
민주당에게 내년 서울시장 재선거는 정권재창출 여부를 판가름할 중대한 분수령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여당은 이 결정적 승부처에 어떤 인물을 후보자로 내보내야만 맞을까?
첫째로 시장과 기업에 친화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한국을 방문한 황인훈(미국명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강남구 삼성동의 코엑스 몰에 위치한 한 맥줏집에서 이재명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함께 치맥 회동을 가졌을 때 수천 명의 젊은 직장인들과 청년들이 이 진기한 광경을 구경하고자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민심이 시장으로 넘어갔음을 웅변한 상징적 장면이었다. 권력에 뒤이어 민심조차 시장으로 넘어간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기업을 적대시하고 시장을 불온시하는 인물이 서울시장 후보자로 출마하면 무조건 필패다.
둘째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철두철미하게 무관한 인물이어야 한다.
법사위는 국민에게 봉사하고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도리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 했다. 국민을 통제하려 했다. 더욱이 민심의 여망에 수시로 역행해왔다. 국민은 여야를 막론하고 법사위 묻은 정치인들을 보편적 민심의 대변자가 아니라 편협한 당심의 호위무사로 여기고 있다. 법사위에서 장기간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면 무조건 필패다.
셋째로 청년들과 겸손하게 소통하려 노력해온 인물이어야 한다.
민주당에는 청년세대와 격의 없이 대화하려 애쓰는 대신에 청년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거만하게 훈계하려 드는 인사들이 당내에 여럿이었다. 그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 집권기에 유달리 많았다.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대조적으로 청년들 곁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전방위로 기울여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에 겪었던 쓰라린 기억이 청년들 뇌리에 워낙 강렬한 탓에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아직은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과 청년들 사이의 거리는 정청래 당대표 체제에서 급속히 벌어졌다. 정청래 전 대표가 미래지향적 비전 경쟁은 소홀히 한 채 시대착오적 유훈정치에 과도하게 집착한 때문이었다. 미래를 과거에 억지로 무릎 꿇리려는 인물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무조건 필패다.
승리의 길은 멀지도 않고, 좁지도 않다. 무조건 필패할 인물들을 차례로 솎아내면 승리할 인물만이 자연스레 오롯이 남게 된다. 그와 같은 정련과정과 선별작업에 오는 8월 17일 선출되는 새로운 민주당 대표는 신속하게 착수해야 한다. 민주당의 숨은 전략자산이라 조롱받아온 장동혁의 맹활약 아닌 맹활약에만 또다시 무책임하게 기댈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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