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메시지가 있었다."
메시지 크리에이터 공희준의 메시지버스
오늘의 메시지 인터뷰 메시지 영웅의 메시지 아카이브
오늘의 메시지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6․3 잠실 항쟁인가, 잠실 사태인가

이재명 대통령의 확실한 교통정리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의 후폭풍이 거세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은 곧바로 당권 싸움에 들어갔다.


당심의 지지를 받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63일 선거를 실질적 승리로 주장하며 마이 웨이(My Way)’를 나란히 선언했다. 민심의 응원을 등에 업은 양당의 비당권파는 선거 결과를 사실상의 패패로 규정하며 정 대표와 장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거대 양당이 승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패자이기도 한 기묘한 구도는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이전에는 목격되지 않았던 초현실주의적 풍경이다. 이와 같은 엽기적인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여권은 이재명 정부와 정청래 대표 체제의 민주당 간의 지속적 탈동조화(Decoupling) 흐름에 그 원인이 있다. 친이재명계와 친정청래계, 정확히 표현하면 친문재인계 모두 승리한 지역구는 내 덕이고, 패배한 지역구는 네 탓인 아전인수식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구조다.


야권의 혼란상은 결정적 승부처였던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는 승리했으면서도 장동혁 대표가 총력전을 펼쳤던 부산 북구 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한동훈 후보에게 일격을 맞은 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대선후보로 활동하던 당시 직접 영입한 김용남 후보자가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 일에 대해 완곡한 어조로 진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당이 김 후보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왕따에 가깝게 방치했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이 대통령은 비록 미소 띤 얼굴로 심경을 밝혔지만 맥락상 분명한 격노였다. 대통령의 이러한 반응은 63일 선거는 여당의 패배했음을 인정하는 확실한 교통정리였다. 당대표 재선을 노리는 정청래 대표의 입지와 운신 폭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대폭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장동혁 대표의 존재에도 불구하고승리를 거뒀음은 상식에 속한다. 장동혁은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또다시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했다. 당권 연장의 노림수가 깔린 당내용 비상계엄령 선포임은 물론이다.


장동혁을 간판으로 내세워서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 승리도,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서의 정권 탈환도 불가능함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명약관화한 진리다.


오세훈과 한동훈 두 명의 강력한 대선주자를 힘들게 확보한 대다수 보수적 유권자들은 장동혁의 조속한 퇴진을 원한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여전히 추종하는 극단적인 윤 어게인세력에 기댄 장동혁의 막가파식 버티기는 커다란 수레를 무모하게 가로막고 선 한 마리 자그마한 사마귀, 곧 당랑거철의 운명을 면하기 어렵다. 많은 국민들이 수레바퀴가 밟고 지나간 정치인 장동혁의 행색은 과연 어떨지 호기심 반, 기대감 반의 심정으로 주시하고 있음을 오직 장동혁 본인만 모르는 형국이다.


여야 전부 책임 공방으로 흙먼지가 자욱하다. 반면, 63일 지방선거를 통해 한 가지는 일찌감치 명징하게 정리됐다. 이번 선거가 기성세대의 완벽한 패배였다는 사실이다.


오세훈은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선호하는 장동혁을 철저히 멀리함으로써 서울시장 선거에서 다섯 번째로 당선될 수 있었다. 오세훈의 경쟁자였던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4050 중년세대만 염두에 둔 것 같은 낡고 상투적인 선거운동을 고집하다 개표 막판에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부산 갑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민주당 후보가 투표일 하루 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일은 2030 세대의 반감을 부르기에 딱 좋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 후보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버금가게 젊은 청년세대로부터 외면당하고 냉소 받는 인물임을 잠시나마 잊었던 걸까?


불후의 명곡 사노라면이 가짜 뉴스가 된 시대


필자의 집은 잠실 먹자골목 근처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밤늦게 자전거를 타고 올림픽공원에 다녀왔다. 자정이 경과한 시점이었음에도 적잖은 숫자의 청년들이 모여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단지 국민의 신성한 기본권인 참정권이 침해됐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으로 몰려들었을까?


언론의 우려 섞인 예상대로 올림픽 공원의 재선거 요구 시위대는 윤 어게인들에 의해 신속하게 오염됐다. 주말과 휴일이 지나고 평일이 시작되면서 학교에 등교하거나 또는 직장에 출근해야만 하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머물던 공간을 성조기를 흔드는 극우 버전의 전문 시위꾼들이 재빨리 찬탈했다. 집회와 시위가 장기화하면 일반 시민들은 사라지고 민주노총 조합원을 위시한 강경파만 남는 진보 측 양상이 거울 이미지처럼 그대로 재연된 셈이다.


그럼에도 63일의 본질은 태극기부대가 잠실의 투표장과 올림픽공원 개표소를 차례차례 오염시킨 데 있지 않다. 투표용지 부족이란 황당한 사건이 터지자마자 수만 명의 청년들이 잠실의 투표소로, 투표함이 옮겨진 올림픽공원 내 핸드볼 경기장 앞으로 즉각적이고 자발적으로 운집했다는 점이다. 선거가 끝난 후 잠실에서 벌어진 일이 잠실 사태가 아닌 잠실 항쟁으로 장차 역사에 기록될 근거이자 연유이다.


사노라면은 그룹 들국화의 리더 전인권 씨와 가수 김장훈 씨가 불러 유명해진 노래다. 지금의 기성세대에게는 청년시절부터 불러온 오랜 애창곡이기도 하다. 불후의 명곡로 대접받아온 이 노래의 백미는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라는 가사다. 노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밑천인 젊음을 가졌으니 쩨쩨하게 굴지 말라고 목 놓아 외친다.


그렇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젊다는 게 두둑한 밑천이 되는, 곧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는 시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산업구조와 인구지형이 급속도로 바뀌면서 이제는 젊다는 게 더는 인생의 종자돈이 되지 않는 때가 되었다. 나이가 먹으면 뱃살과 함께 소득과 재산과 경력도 자연스레 늘어나는 시대는 불가역적으로 종식됐다.


인간은 본래 경험의 포로이기 마련이다. 젊다는 게 밑천인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가 젊은 게 밑천이 아닌 청년세대를 겨냥해 쉼 없이 퍼붓는 무차별적 조언과 호통은 쓸데없는 잔소리가 되고, 심할 경우에는 폭력적 협박이 된다. 선거가 끝난 후 기성세대 구성원인 무수한 교수와 학자와 언론인과 지식인과 정치인이 요란하고 거창하게 쏟아내는 청년 담론이 예전에 숭례문에 불이 났을 적에 지붕 위만 적시던 소방차의 물처럼 공허하고 무용한 까닭이다.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중국 대륙을 휩쓸던 무렵 조반유리(造反有理)’라는 말로 나이어린 홍위병들의 준동을 옹호했다. 기성세대를 향한 모든 청년세대의 반란들에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영원한 청춘스타 제임스 딘 식의 이유 없는 반항은 없다는 게 모택동의 인식이었다.


모택동은 오늘날의 한국의 청년세대가 단연 혐오하는 근현대사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일 터이다. 역사의 전개과정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모택동이 역설한 조반유리의 진가와 정당성이 하필이면 2020년대의 한반도 남쪽에서 제대로 증명됐으니. 1960년대의 중국 홍위병에게도, 1980년대의 한국의 86 세대에게도,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의 힘든 시기를 통과하던 소위 영포티 세대에게도 통용된 젊다는 게 한 밑천인 시대가 2020년 후반과 맞닥뜨린 대한민국의 2030 세대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지방선거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경험이 다르면 세계관도 달라지는 법이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 마케팅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질 즈음 기성세대가 머릿속에 떠올린 광경은 광주시내로 밀고 들어오는 신군부의 탱크였다. 그런데 청년세대가 그린 심상은 달랐던 듯싶다. 그들은 자기들 또래의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을 상대로 거칠게 고함을 지르는 나이든 아저씨들의 모습을 연상했다. 그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스타벅스 사태가 길어질수록 여당에게 되레 독이 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감지한 나는 정원오 후보가 스타벅스 매장을 방문해 젊은 직원들을 위로하는 퍼포먼스를 할 것을 지인을 통해 권유제안했는데, 정원오 선거캠프를 꽉 채운 86 세대 정치인들과 영포티 운동원들에 의해 일고의 가치조자 없는 국힘스러운 아이디어로 일축됐던 모양이다.


우리는 과거는 미래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문제는 이게 진정한 깨달음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대신 보통은 말로만 끝난다는 점이다. 6070 세대는 4050 세대에게 왜 밀려났을까? 그들이 과거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4050 세대의 기득권 체제가 아무리 강고하다 한들 종국에는 2030 세대에게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들 역시 머잖아 과거가 될 테니까.


필자가 정치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각종 선거 출마자들에게 빈번히 들려주는 경고성 훈수로 장황했던 요번 글을 마무리하련다.


젊은 애들과는 절대 싸우지 마세요. 무조건 집니다.”


매체에 기고한 글

수신확인 0 필자에게 메시지 보내기(후원)
 
목록으로
···
댓글 목록
공희준.com (C)Copyright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