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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과 한동훈을 생각한다 (2)

안철수의 마라톤과 이준석의 코딩


한국의 보수 정당은 고학력 엘리트들을 전통적으로 선호해왔다. 서울 법대 출신 판검사들과 서울대 상대를 나온 고위 경제 관료들은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계기로 탄생한 민주공화당으로부터 윤석열의 123 친위 군사쿠데타의 공범 같이 되고 만 현재의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보수정치의 핵심적 축을 이뤄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기존 보수정치의 관점과 문법에서 바라보면 매우 이단적 존재이다.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문과생들이 독점해온 제도권 정치판에 돈키호테처럼 혈혈단신으로 뛰어든 왕년의 의대생이었다.


문제는 안철수가 동종업계 종사자일 직업 정치인들을 상대할 때는 물론이고 유권자인 일반 국민을 대할 경우에서마저 그 속내를 좀체 이해하기 어려운 돈키호테가 돼버렸다는 점이다.


안철수 의원에게 정치는 무엇일까? 나는 안철수에게 정치는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이라고 규정한 터이다. 왜냐? 정치인 안철수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모습이 하필이면 고독한 마라토너 안철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다수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단체종목을 애호하기 마련이다. 동네 조기축구회가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체육 동아리로 자리매김한 배경이다. 반면, 안철수는 몇 시간 동안 남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아도 되는 운동인 마라톤에 흠뻑 빠져 있다.


그가 마라톤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시기는 대한민국 사회를 잠시나마 들었다 놨다 했던 안철수 현상이 급속히 퇴조한 무렵과 맞물린다. 자신을 구세주처럼 받들다가 순식간에 매정하게 내팽개친 대중의 변덕과 정치권의 염량세태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이 안철수를 마라톤의 세계로 이끌었을까? 나는 만약에 그와 단 둘이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진지하게 한번 물어볼 생각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본인이 코딩을 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자주 소개한다. 코딩을 할 줄 아는 현역 국회의원은 분명 귀한 인재다.


그런데 묻고 싶다. 이준석이 코딩을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까닭에 개혁신당은 젊은 남성들로부터만 지지받는 폐쇄적인 마니아 정당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걸까? 이준석 대표가 코딩을 했다는 소식이 들릴 적마다 2030 남자들이 주된 이용자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펨코에서는 거의 난리가 난다. ‘역시 이준석이라는 칭송과 찬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펨코 이외의 공간들에서는 긍정적 반응이 없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냉소적 투다.


이준석이 이런 현실을 진짜 모를까? 정보 습득과 취합의 속도가 남다른 이준석 대표는 그가 두문불출하고 코딩을 하는 게 개혁신당의 외연 확장과 지지층 확대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음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리라. 코딩 작업을 할 시간에 이준석에게 강한 거부감을 지닌 여성들이나 중장년 세대의 표심을 공략할 행보를 하는 게 실리적으론 훨씬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


따라서 이준석의 코딩은 안철수의 마라톤과 비슷한 의미와 목적을 띠는 활동이 된다. 듣기 싫은 소리에 귀 닫고, 불편하고 껄끄러운 인간들 만나지 않을 좋은 구실이 돼준다. 안철수와 이준석이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에 각자의 방식으로 열중하면 열중할수록 그들의 정치인으로서의 궁극의 꿈, 곧 정권 창출을 성취할 가능성은 더욱더 낮아진다고 하겠다.


한동훈의 팬들과의 즐거운 한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안철수 의원과는 여간해서는 접점이 없는 관계이다. 협력도 없고, 갈등도 없다. 한동훈과 이준석은 가히 견원지간의 사이이다. 두 사람은 서로 친해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한동훈의 지지층이 이준석을 혐오하고, 이준석의 지지자들이 한동훈을 한심하게 여기는 탓이다.


한동훈과 이준석은 과거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지지층을 선제적으로 견인할 역량이 없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같이 강성 지지층에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유형에 가깝다. 적잖은 숫자의 정치전문가들이 한동훈과 이준석에게 통 큰 연대를 주문해봤자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한 이유이다.


스펙만 따지면 한동훈은 법대 다닌 안철수로 분류될 수 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경력이 화려하다. 하지만 한동훈에게는 안철수와는 확연하게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 한동훈은 자기와의 고독한 승부대신 팬들과의 즐거운 한때에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서너 시간에 걸쳐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묵묵히 달리기만 하는 건 한동훈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역이 되리라.


한동훈의 열성 팬들이 그를 왜 열렬히 지지하는지에 관한 체계적인 학문적 연구는 아직 수행된 적이 없다. 선거철마다 흔하게 실시되는 심층면접조사(FGI : Focus Group Interview)를 몇 차례는 진행해봐야 한동훈 팬들의 성향과 실체가 면밀하게 규명될 성싶다.


필자 나름대로 분석한다면 한동훈의 팬들은 그의 똘똘한 면모에 열광해왔다. 오죽하면 김웅 전 의원 같은 인사들은 한동훈을 추억의 만화영화 개그쟁의 스머프에 등장하는 똘똘이 스머프에 드러내놓고 빗댔겠는가?


일본 전국시대의 군웅 오나 노부나가는 신뢰하는 가신이었던 아케치 미스히데의 돌연한 모반으로 말미암아 원치 않는 자결로 내몰리기 직전에 적은 혼노지(本能寺)에 있다는 말을 탄식조로 유언처럼 내뱉었다고 한다.


한동훈의 적 아닌 적은 어디 있을까? 다름 아닌 그의 열성 팬덤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한동훈의 똘똘한 이미지에 매혹된 팬들을 부단히 만족시키려면 한동훈은 사사건건 잘난 척을, 아는 척을, 똘똘한 척을 해야만 한다.


지도자 즉 리더는 잘난 사람이 아니다. 난 사람이다. 아는 사람이 아니다. 하는 사람이다. 똘똘한 사람이 아니다. 단단한 사람이다.


똘똘함을 과시하려면 끊임없이 비교위위를 증명해야만 한고, 끊임없이 비교우위를 증명하려면 타자의 머리꼭대기에 어떻게든 올라서야만 한다. 대화와 타협은, 연대와 협력은 언감생심이다.


한동훈의 열성 팬들은 한동훈이 얼마나 똘똘한지를 오늘도 자랑한다. 한동훈은 팬들의 구미에 맞추고자 때로는 누구를 반박하고, 때로는 누구를 핀잔하고, 때로는 누구를 망신을 줘야만 한다.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이나 팬들과의 즐거운 한때나 최종적 결과는 동일하다. 사면초가이고 고립무원이다. 친구는 없는데, 적만 계속 만드는 뺄셈의 정치다.


똘똘함의 굴레와 한계에서 허우적대는 한동훈에게 이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팬들의 빈축을 사더라도 타인을 향한 여유와 포용을 보여주는 일이다. 잠시 지는 것이 영원히 이기는 길임을 아는 일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겨냥한 강렬한 호승심을 발휘했다. 이는 그의 팬들을 몹시 즐겁게 해주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한동훈이 조국과의 직간접적 말싸움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다고 하여 그에게 과연 무슨 리더십이 생겨날까? 전국을 방물장수처럼 떠돌며 똘똘함을 뽐내기 바쁜 한동훈 전 대표에게 진심으로 당부하노니 올봄에는 참다운 리더십에 관해 그야말로 조용히 묵상(黙想)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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