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주자의 유례없는 판 흔들기 시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말미암아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분위기이다. 양당의 합당을 전격적으로 제안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합당의 또 다른 한 축인 혁신당의 조국 대표, 합당의 절차적 정당성과 정치적 효용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당 반대 의사를 표명한 민주당 내 합당 반대론자들 모두 이 전 총리의 장례식이 엄숙하게 마무리될 때까지는 표면적 움직임을 자제할 것으로 관측되는 터다.
정당 간의 통합은 그 성격과 규모를 막론하고 모조리 정계개편에 해당한다. 정계개편은 명분이나 세력이 밀리는 정당과 정파가 추진하는 게 일반적이다. 1990년 1월 22일 느닷없이 발표된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3당의 합당 결정이 이의 전형적 사례에 속한다.
당시 여소야대 구도를 일거에 뒤엎으려는 노태우 대통령의 욕망과,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에 의원 숫자가 밀린 탓에 제2야당 당수로 전락해 존재감이 미미해진 김영삼 총재의 초조함과. 춥고 배고는 야당 생활을 체질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김종필 총재의 양지 지향 본능이 상호 작용한 결과물로 216석의 국회 의석을 보유한 초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이러한 우리나라 정치의 통상적 문법을 감안하면 정 대표의 합당 제안은 좋게 평가해 파격적이고 냉정하게 따지면 기이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꾸준히 높게 나타나고 있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의 국민의힘의 지지도 차이가 경우에 따라선 두 배 가까이 이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쉬울 것 없을 여당 수장이 되레 판을 흔들려 시도하고 있으니 기성 보수 언론사들은 물론, 진보적 뉴미디어 매체들마저 정청래에게 모종의 꿍꿍이속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당연히 무성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정 대표가 합당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날은 하필이면 한국종합주가지수, 즉 코스피(KOSPI) 지수가 우리나라 주식시장 최초로 5천 포인트를 돌파한 기념비적 날이었다. 정청래의 본래 의도가 뭐였던 간에 그는 축하 무대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고 말았다.
조야하게 비유하자면 이는 경사스러운 결혼식 당일, 신부의 친삼촌이 조카딸의 옛 애인을 예식장으로 눈치 없이 초대한 격이었다. 이 재명 대통령을 향한 지지 성향이 열성적이기로 소문난 내로라라는 정치 유튜버들이 정 대표를 일제히 성토하고 나선 게 전연 이상하지 않은 연유이다.
압도적인 1등 주자가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창조적 파괴로 불러야 마땅할 대담한 혁신에 착수한 일은 현대 자본주의 기업사에 여럿 기록돼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사의 제품에 관해 살벌한 악담과 저주를 퍼붓기로 유명했다. 그는 심지어 삼성전자의 간판 휴대전화 제품인 애니콜 전화기를 운동장에 쌓아놓고 공개 화형식을 벌이기도 했다.
정청래 대표는 판을 흔들려 하면서도 민심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는 특별한 개혁 정책과 의미 있는 쇄신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단지 민주당과 혁신당의 물리적 결합을 꾀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국민의힘에게 5월 지방선거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려면 여권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민주당과 혁신당의 합당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의 통합을 촉발할 것이 뻔하다는 점이다. 여당이 갈라지면 야당도 분열하고, 여권이 단일대오를 형성하면 야권도 무조건 뭉치고 보는 게 21세기 대한민국 제도권 정치의 뉴노멀이었다. 민주당과 혁신당의 산술적 합당 효과는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의 역시나 산술적 합당 효과로 인해 곧바로 상쇄될 게 명약관화하다.
이렇듯 명분도 취약하고 실리도 부족한 합당을 정청래 대표가 밀어붙이는 근본적 동기와 이유는 필자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대고 상상력을 발휘해도 딱 세 가지 시나리오로만 귀결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정청래 대표의 당권 재창출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조국 대표를 범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밀어 올리겠다는 뜻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범여권의 이름난 대변자들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민주당과 혁신당의 합당에 요란하게 찬성하고 있는 김어준 총수가 선출되지도, 책임지지도, 교체되지도 않는 킹 메이커 권력을 항구적으로 누리겠다는 뜻이다.
항공전함을 능가하는 쇄빙항모의 독창성
방금 언급된 세 가지 시나리오는 본질상 하나로 엮여 있다. 정청래의 당권과 조국의 집권과 김어준의 장외 종신 권력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 까닭에서이다. 3인은 시나브로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민주당과 혁신당의 인위적 합체가 여권의 실질적 전력 증강에 과연 보탬이 될까? 나는 태평양 전쟁 말기 전세가 크게 불리해진 일본 연합함대가 누리꾼들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마개조’ 과정을 거쳐 바다에 부랴부랴 띄운 이른바 항공전함들이 문득 떠올랐다.
일본 해군 군령부는 전함의 장점도 살리면서 항모 역할도 수행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전함의 후방 주포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비행갑판을 깔았다. 결말은 뻔했다. 전함으로의 기능은 상실한 채 항모 구실도 변변히 하지 못하는 멍텅구리 군함의 출현이었다.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차례로 등장한 두 척의 항공전함 이세(伊勢)와 휴가(日向)는 광활한 대양으로 나가 미국 해군 함대와 장렬하게 교전하다 침몰하기는커녕 항구에 닻을 내린 채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미 해군 항공모함 함재기들의 무차별 폭격을 받고 얕은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굴욕을 당했다.
군함의 함형에 빗대면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그 누구도 대적하기 불가능한 막강하고 거대한 원자력 항공모함, 곧 슈퍼 캐리어(Super Carrier)로 분류될 수가 있다. 국민의힘은 함장 윤석열이 저지른 희대의 어이없는 자폭으로 인해 전투 불능 사태에 빠진 지 오래다. 지금은 그 물 새는 배의 알량한 지휘권을 지키겠다며 현 당대표 장동혁의 주도 아래 전임 당대표 한동훈을 바다에 정치적으로 수장시키려는 추태조차 서슴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정청래 대표는 만인이 탐내고 부러워하는 항공모함 더불어민주호를 조국호라는 작은 쇄빙선과 합체하려 한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 해군은 멀쩡한 전함의 포탑을 뜯어낸 다음 엽기적인 항공전함을 만든 바 있다. 정 대표는 한 술 더 뜰 기세다. 그가 염두에 둔 선박은 쇄빙선이 되어 얼음을 헤치고 항해하면서 동시에 함재기도 사출하는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선박일지 모른다.
그래서 인공지능(A)에게 부탁해봤다. 항공모함과 쇄빙선을 합쳐놓은 쇄빙항모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크고 아름다운 배를 그려주더라. 도널드 트럼프식 어법으로 ‘Big and Beautiful Ship’을. 정청래 대표의 멋지고 환상적 구상이 조선 강국 한국의 품격과 위신에 걸맞게 현실에서 정상적으로 구현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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